2025. 7. 6. 20:52ㆍ🕘 Still, I Work
요즘 들어 자주 바라보는 게 있다.
바로 내 책상 위 풍경이다.
커피자국이 희미하게 남은 코스터,
회사 이름이 찍힌 연필꽂이,
그 옆에 놓인 비타민 한 통과
반쯤 비워진 핸드크림.
그 사이로
사진 한 장도, 엽서도, 피규어도 없이
무표정하게 놓여 있는 내 모니터.
한마디로 말하자면
'텅 빈 듯 꽉 찬' 공간이다.
나는 사무실에서 내 책상을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은 '가장 감정을 숨기는 공간'
이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옆자리 동료의 책상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귀여운 인형 하나,
핸드폰을 세워둘 수 있는 거치대,
가끔 바뀌는 배경화면 속 가족사진.
그 안엔 그 사람의 온도가 느껴진다.
그에 비해 내 책상은
무색무취.
익숙하다는 이유로 아무 장식도 없이
'그냥 있는 것들'만 놓여 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이 책상도 나를 말해주고 있다.
눈에 띄지 않지만
항상 가까이 두는 진통제,
긴장하는 날이면 자꾸 열어보는 립밤,
점심시간마다 한 모금씩 마시는
루이보스티 티백 봉지.
이 책상은 내 감정의 풍경을
아주 조용히 전시 중이다.
퇴근 시간 즈음이 되면,
모니터 앞에 놓은 물건들이
조금씩 어지러워진다.
처음엔 가지런히 놓았던 펜도
하루를 거치면 엉켜 있고,
마우스패드는 어딘가
살짝 기울어 있다.
그 흐트러짐이
오늘 하루 내 마음의 상태 같다.
책상 정리를 하다가 문득 든 생각.
나는 왜 이 책상을
내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공간처럼 꾸몄을까?
너무 티 나지 않도록.
너무 튀지 않도록.
"그냥 일만 하러 온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회사에서 감정을 꺼내 놓는 일은
종종 불리함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꾸역꾸역 눌러
책상 서랍에 밀어 넣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은 메모 하나,
누군가가 준 스티커 한 장,
같이 회의했던 날 받은
동료의 포스트잇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책상 구석에 붙여두고 있다.
그건 아주 조용한 저항이자
내가 사람이라는 증거 같다.
책상 위의 모든 풍경은
사실 '일의 흔적'이 아니라
버텨온 흔적이다.
정리된 책상이 멋있어 보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어질러진 책상이
더 솔직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퇴근 전
의자에 기대어
내 책상을 한번 쓱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한다.
"이 공간이 나를 안아주었으면.."
내일도 이 책상에 앉아
나를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지켜내기를 바란다.
📌 Still Note #004
당신의 책상 위에는 어떤 감정이 놓여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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